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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퍼온 글임을 밝혀 드립니다


.. 아직까지두 독일에서는 입국수속할때
차범근의 조국에서 왔다라고 하면
수속절차가 무척 수월해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차범근을 막연하게 `유럽에서 성공한 축구선수`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세계에서 보는 눈은 그렇지 않습니다

MBC에서 해설하는 차범근을 우린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지만, 해설하는 차범근을 인터뷰하려는
긴 줄의 외국기자들의 눈빛은 경외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다가 "그건 좀 오바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차범근의 일화 몇몇 말고,
구체적인 자료를 본다면 수긍하겁니다

차범근은 지금의 지단, 베컴, 피구였으며
이 말은 단 한치의 과장도 없는 말 그대로였습니다

우리는 영웅을 기다리지만 이미 우리에겐 영웅이 있었고,
프랑스의 한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차범근에 대한 시를
썼었고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차붐을 낳은 어머니와 그의 조국에 경의를 보낸다`.


외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차범근이 골을 넣으면
전광판엔 `차범근` 세글자가 한글로 번쩍였고 그걸
본 우리 교포들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합니다

38세의 차범근이 19세 독일의 국가대표선수보다
체력이 월등했다는건 그가 얼마나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밑의 글은 퍼온글이며, 98년도 우리의 냄비근성으로
차범근이 감독자리를 박탈당한 그 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차범근은 누구인가


=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박스컵). 말레이지아 전 1:4로 뒤지던 상
황.
종료 5분 남겨놓고 3골의 소나기 골.


=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시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 선정..주간 베스트11.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결정 골.
KICKER 선정 이주일의 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시스트로 선취골.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범근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 푸르트 3:1로 승리.

=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최고 시청률.


=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
(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시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 경기 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
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차범근 거절).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및 득점 4위.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5만 관중 기립,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차범근 선수가 세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106골/218경
기...
<안티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차범근이 한 일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에서 기막히게 묘사를 해놓았기
에 이를 인용한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
저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
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
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
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
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


차범근이 한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조선일보에서조차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
물에 선정한 위인이다.1998년 독일 축구역사가협회에서는 20세기최고
의 아시아선수로 차범근씨를 선정했다.1999년 축구잡지로는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월트사커지는 차범근씨를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
로 선정했다.

그가 차지했던 분데스리가 MVP 는 지금의 세리에 리그의 MVP나 다를바
가 없다.
80년에는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차범근인 것이다.그가 바로 변변한 홈페이
지 하나 없이 매장당해버린 대한민국이 낳고 대한민국이 버린 차범근
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태풍군은 한 인터넷까페에 차범근씨의 사진과 함
께 이런글을 올려놓았다.


"저 뒤에 망치들고 계시는 저분 저분이 바로 우리 감독님 이시다.우리
다칠까봐 망치들고 얼음 깨는 저분. 저분이 바로 세계속의 갈색 폭격
기 우리 감독님이시다."


그리고 저기 작은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이 다칠까봐 묵묵히 얼음을 깨
고 있는 허리숙인 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묻어버린 ..


그를 버린 한국축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차범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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