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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빛나는 도시화합


외계 우주선을 닮은 쿤스트 하우스
고풍스러운 건물들 위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독특한 외관의 쿤스트하우스. 밤이면 청색 아크릴 외장재 안쪽에 설치된 700개의 형광등이 컴퓨터 시스템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패턴으로 점멸해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제공=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오스트리아의 유서 깊은 역사도시인 그라츠 시 한가운데로는 도시의 젖줄인 무어 강이 흐른다. 여름엔 래프팅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수량이 풍부한 이 아름다운 강의 양쪽으로 전혀 다른 두 개의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동쪽은 1999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르네상스, 바로크풍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중상류층 거주지역이지만 서쪽은 동구권을 비롯한 인접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저소득층 노동자 거주지역이다.
한강이 강남과 강북을 나누듯 무어 강은 도시를 동쪽과 서쪽으로 가른 것.

2003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그라츠가 도시를 변화시키며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강동과 강서의 통합이었다. 도시의 동과 서가 서로 건널 수 없는 저편이 아니라 새로운 그라츠를 만드는 두 개의 수레바퀴일 수 있음을 깨달은 도시민들은 문화를 통해 도시의 갈라진 틈을 메우기를 절실히 원했다.

○ 친근한 외계인, 쿤스트하우스
문화를 통한 도시 개조와 계층 간의 사회적 통합을 위해 무어 강을 적극 이용하고 강 양편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빈곤층 밀집 지역인 무어 강 서쪽 지역이 예술로 도시를 재개발하기 위한 ‘아트존’으로 설정됐다. 그 중심에는 2004년 9월 5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건설된 쿤스트하우스가 있다.


영국의 건축가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가 설계한 쿤스트하우스는 우주선처럼 보이는 4층짜리 유선형 건물. 문어의 빨판처럼 촉수를 내민 지붕의 창과 밤이면 화려한 섬광으로 번쩍이는 청색 아크릴 외장 때문에 건물 자체가 시각적 충격이다. 소장품 없이 다양한 현대미술의 실험장으로 자유롭게 운영되는 쿤스트하우스는 이처럼 고정관념을 탈피한 아방가르드 건축물이다.


그라츠에서 가장 높은 시계탑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쿤스트하우스는 중세풍의 빨간 지붕 사이로 검푸른 연체동물이 촉수를 내밀고 기어가는 듯한 형상이다. 시민들의 80%가 당초 새로운 미술관 건립 계획에 반대했지만 이제는 이 건물에 ‘친근한 외계인(A friendly alien)’이란 별칭을 붙여줄 정도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쿤스트하우스는 주변의 도시공간까지 문화적으로 바꾸었다. 큰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모여들 듯 쿤스트하우스 주변에 재즈바, 영화관, 아틀리에, 콘서트홀, DVD감상실, 쇼핑센터 등 작은 공연장과 카페가 속속 들어섰다. 범죄율이 높아 밤이면 아예 강을 건너오지 않던 동쪽 구도심 지역 사람들도 서쪽을 찾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이제 밤마다 새로운 문화를 만끽하는 젊은이들로 북적댄다.



그라츠대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로베르트 브라틀러(29) 씨는 “원래 동쪽 역사지구에 살고 있었는데 문화적 매력 때문에 쿤스트하우스 근처로 집을 옮겼다”며 “사람들이 이제는 이곳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도시의 밝음과 어둠을 잇는 무어강의 인공섬
도심의 또 하나의 명물은 무어 강에 놓인 길이 46.6m의 보행교인 ‘문화의 다리’이다. 그라츠 출신 미술전문 기획자인 로버트 푼켄호퍼와 뉴욕 출신 건축가 비토 아콘치의 예술적 상상력은 이 다리를 통해 강 양편의 ‘충돌’을 ‘화합’으로 전환시키는 기적을 낳았다.


‘문화의 다리’ 중간에는 도시민 모두가 강에서 만나 즐길 수 있는 ‘인공섬’이 조성됐다. 강수량에 따라 배처럼 뜨고 가라앉도록 설계된 인공섬은 마치 강물의 소용돌이가 형상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양쪽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인공섬에 들어서면 투명한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카페가 주민들을 맞는다. 흐르는 강물과 같은 눈높이에서 차를 마시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다른 한편에는 70평 남짓한 야외무대 공간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에서는 자그마한 재즈콘서트와 마임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도시민의 휴식공간이 된다.

인공섬 카페 직원 게르트 볼프(24) 씨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주민들이 와서 와인을 즐기지만 독일 헝가리 체코 이탈리아에서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도시의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예술의 상상력이 사회를 깨우고 건축이 도시를 세상 바깥으로 인도한 그라츠. 이 도시는 이제 더는 빈과 잘츠부르크의 영광에 가리지 않는다.
그라츠=이영범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공공의 미술…도심광장에 투명엘리베이터 “천국의 계단”▼
그라츠 동쪽 구도심 한복판 광장에는 건물도 없는데 투명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성모 마리아 상과 나란히 서 있는 도심 엘리베이터는 시민들에게 천국으로 오르는 구원의 계단을 경험하게 하기 위한 것일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15m 상공에서 시청 앞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색다른 전망이 펼쳐진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시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문화의 다리’와 다리 가운데 부분에 설치된 인공섬.
미술기획자 푼켄호퍼 씨가 고안한 이 인공섬에서 시민들은 차를 마시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재즈 연주를 즐긴다.
이 엘리베이터는 2003년 이후 그라츠에 세워진 도심 내 공공미술 작품 중 하나다. 그라츠의 공공미술은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까지 자극한다. 기이함에 그치지 않고 웃음을 자아내 시민들에게 여유를 갖게 한다.

그라츠 철도역 내부는 주사위 내부처럼 정육면체에 가깝다. 벽과 천장에는 붉은 빛의 물결이 그려져 요동친다. 이 역동적인 이미지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며 환상 체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라츠 철도역
쿤스트하우스의 표면은 밤이면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변한다. 곡면으로 된 청색 아크릴 안쪽에 700개의 원형 형광등이 설치돼 있다. 하나하나가 픽셀로 작용하는 이 형광등은 컴퓨터로 컨트롤되면서 건물 표면에 다양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소리예술가인 막스 너이하우스는 쿤스트하우스에 소리까지 부여했다. 이 건물은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시 정각 10분 전에 5분간 초저음의 진동음을 낸다.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가는 낮은 울림으로 건물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시민들과 매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다양한 산업박람회가 열리는 ‘슈타트할레’(시민센터)에는 ‘달라이 라마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지붕을 인 건물이 있다. 2003년 그라츠를 방문한 달라이 라마와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던 청중 1만여 명을 수용했던 메인홀의 거대한 지붕(길이 150m, 폭 70m)은 건물 밖을 넘어 도로 위까지 기형적으로 튀어 나와 있다. 나른하고 평온한 도시에 뭔가 강렬한 인상을 던져주는 엄청난 물건이다.

이 밖에 그라츠의 어머니 산인 슐로스베르크 산에 지하암굴을 뚫어 만든 예술공연장, 어린이 박물관에 설치돼 아이들의 놀이터로 이용되는 콘크리트 아트 작품도 유머러스한 도심의 휴식처다.
그라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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