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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주몽`, 몇가지 문제점




우려되는 드라마‘주몽’
1. 화제의 드라마 ‘주몽’
MBC 창사 45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주몽’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총제작비가 300억원에 이르고 총 60회 장편 대서사시로 계획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한민족 최초의 국모이자 여걸인 소서노의 꿈과 사랑을 그린 블록버스터 사극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국민드라마’라는 말이 나오고 있고 ‘주몽 폐인’이 생길 정도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동북공정으로 시끄러운 작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리 민족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일단 축하할 일은 분명하다.

2. 우려되는 드라마 ‘주몽’
그러나 인기를 떠나서 냉정히 바라보면 이 드라마는 상당히 심각한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첫째, 관련 사료가 극도로 부족한데다 한국의 고대사 영역에는 전문가도 별로 없어 작가의 상상력과 역사인식에 의해 이 드라마가 꾸려갈 것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욱 문제이다. 민족사의 여명을 작가의 상상에 맡긴다니 말이다. 또 관련 기록이 적은데다 그 기록조차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 경우 중국의 정사를 검토해야하는데 주몽과 관련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족 또는 한족과 매우 가까운 인물들만이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고 나머지는 사실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철기병 둘째,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민족 드라마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지만 동북공정에 두 가지 부정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다. 하나는 고대 한국인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함으로써 범한국인(범쥬신족) 역사공동체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민족사의 여명기를 잘못 설정하여 한족(漢族)의 식민지에서부터 고구려의 수립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함으로써 민족사의 여명기가 마치 한족의 피지배자로 묘사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족의 패권주의가 만주 일대로 확산되자 현토태수에게도 부여왕이 쩔쩔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마치 현대 한반도의 모습과도 묘한 일치를 이루고 있다.

셋째, 장중한 민족 대서사시를 나관중 『삼국지』와 같은 중국 통속 무협지의 형태로 드라마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이것은 나관중 『삼국지』식으로 만들어졌던 KBS 드라마 ‘왕건’이 가지고 있던 심각한 ‘소중화주의적’ 근성이 한국 역사 드라마 도처에 온존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다섯째, 맞춤 드라마가 가지는 문제점들이 나타날 수 있다. 방송 소비자들의 기호에 지나치게 영합하여 소비자가 보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실어 담으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글래디에이트’를 보면 철인황제 아우렐리우스로 지성인의 관심을 유발시키고 인트로로 나오는 사실적 전투장면은 전쟁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영화사상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인 장면들, 예컨대 벤허식의 전차경기, 스파르타쿠스식의 검투장면, 쿠오바디스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로마 등을 한 곳에 모아서 거대한 볼거리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가 되었다.

여기에 주인공의 순애보적인 슬픈 사랑으로 여성 관객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사실을 왜곡하고 시대와는 동떨어진 판타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MBC 시청자 게시판에 자주 나오는 말이 주몽을 보면서 ‘해신’, ‘브레이브 하트’, ‘반지의 제왕’, ‘불의 검’ ‘아더왕 이야기’, ‘인디아나 존스’ 등이 연상된다는 의견들이다.


△가운데 소서노, 오른쪽 우태여섯째, 역사적 고증 문제를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나라의 실질적 지배자(왕)였던 공손도를 상인 연타발로, 백제의 시조가 되는 우태와 그의 부인 소서노를 단순히 상단(商團)의 리더로 묘사함으로써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가 매우 궁금하다. 이들은 ‘주몽’ 관련 신화 전체를 통틀어서도 몇 안 되는 실존인물들로 추정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 드라마 전체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주몽은 우리 민족의 한 아버지의 표상(Symbol)이라고 봐야하지 태조 왕건이나 이성계와 같은 구체적인 실존인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드라마 ‘주몽’에서 말하는 한민족의 국모인 소서노와 그의 아버지인 연타발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삼국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사서들에는 연타발이나 소서노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소서노의 결혼에 대해 가장 근접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대체적인 내용은 부여의 왕자 또는 부여왕이 사실상 연나라왕인 공손도의 따님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소서노의 남편인 이 부여왕 또는 부여왕자가 바로 백제의 시조인 구이왕이라고 보고 있다.

냉정하게 본다면 『삼국사기』의 기록에만 의존하여서는 실존인물을 판정하기가 어렵다. 특히 이들이 활동하는 지역은 요동과 만주지역이기 때문에 당시 그 지역에서 왕조를 건설했던 사가들의 기록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공손도로 추정되는 연타발을 단순히 상인세력으로 본 것은 이 드라마의 작가가 지나치게 과거의 유명 드라마 ‘상도(商道)’식의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아니면 연타발을 진(秦)나라의 여불위와 같은 대상인으로 묘사한 재야사학의 기록(한단고기 등)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데 문제는 그것을 고증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소서노(한혜진) 소서노는 기록대로라면 평범한 한족(漢族) 여성에 불과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이 드라마 전체의 기획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우태와 소서노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즉 소서노는 그저 평범한 한족(漢族)여인으로 부여왕과 결혼한 사람인데 이를 지나치게 해석하여 오히려 우리 민족 국가들의 건국과정에서 한족 여인의 위상만 높여 동북공정을 이상한 방향으로 유리하게 몰고갈 수도 있다.

연타발과 소서노는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삼국사기』백제본기에만 나타나 있기 때문에, 『삼국사기』의 기록이니 무조건 믿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일본서기』에만 나타나는 진구황후(神功皇后) 설화를 믿어라고 강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분석하겠지만 백제의 시조로 추정되는 우태를 일개 한족(漢族)의 상단 행수로 묘사한 것도 심각한 역사 왜곡을 초래하여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는 누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한군(漢軍)을 상징하는 철기병(鐵騎兵)은 마치 중세 유럽의 기사들의 모습처럼 묘사하면서 이 기병의 힘에 유목민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실제로는 한족이 보병을 주축으로 한 군대이고 부여 등의 유목민은 기병을 주축으로 하였다.

원래 청동기와 철기는 유목민의 고유 브랜드로 이들이 황하 이남으로 전파시킨 것이지만 황하 이남의 농경민들이 이들 받아들여서 더욱 새롭고 견고한 무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철기병이 설령 있었다고 해도 유목민을 제압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중무장한 유럽의 철갑기병들이 몽골의 경기병에 의해 쉽게 제압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부여왕(전광렬) 나아가 최근 들어 한국 역사 드라마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부여왕이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한다거나 황제(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오버하는 것은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도 아니지만 불필요하다. 중국의 지배자를 황제로 하는데 이것은 민족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족들이 말하는 오랑캐라도 세계의 중심의 지배자가 되면 황제를 칭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민족적인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역을 통일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가가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2만의 한나라군 병사에 대적할 수도 없는 처지에 황제라고 칭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황제를 칭하는 것은 민족과 무관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족(漢族 또는 漢人) = 중국의 지배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중국의 지배자가 한족이었던 경우는 한나라 - 명나라 - 현대 중국 공산당 정부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中國)이라는 말은 원래는 세계의 중심(center of the world)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였는데 중화민국 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어 고유명사화되면서 중국 = 한족의 중국과 구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 중원의 지배자였던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는 중국을 통치했지만 이들은 한족의 나라가 아니었다.

이들은 대부분 만주 - 몽골 지역의 유목민족(쥬신)으로 원주지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중국을 경영해간 것으로 한족과는 실질적인 관계는 없었다. 물론 현대 중국 공산당 정부는 보통명사 중국(과거)과 고유명사 중국(현대) 사이를 교묘하게 줄다리기하여 동북공정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증을 무시한 드라마는 심각한 역사인식의 왜곡을 초래할 수도 있다. 즉 사실에 좀더 접근하여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고대 한국인들의 실체를 더욱 모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부여와 같은 유목민들이 건설한 국가들은 중앙권력이 그다지 강대하지 않았다. 즉 드라마의 금와왕과 같은 강력한 형태의 중앙집권화된 권력이 당시에는 존재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정치 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유목민의 특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드라마의 취지를 재미있고 통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지만 크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강대한 부족세력과 그들의 이합집산은 범한국인(범쥬신족)들의 기본적인 민족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 ‘주몽’은 역사적 사실 여부와 향후 전개되는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관련하여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물론이고 중세 유럽의 기사를 연상시키는 철갑 기병과 한족의 중앙권력이 지나치게 만주 일대까지 통일적으로 강력하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등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BC 1세기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3. 드라마 ‘주몽’ 문제의 본질 : 주몽의 실존성

△주몽(송일국)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은 해모수와 유화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금와의 아들로 자라고 스승이 아버지임을 알지못한 채 사별하고 만다. 주몽은 일생동안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그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 이별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과 슬픔을 극복하고 빼앗긴 고조선의 하늘을 되찾고 고구려를 건국해 한민족에게 가장 벅찬 역사를 안겨주는 민족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한 마디로 “고조선의 하늘을 되찾은 고구려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좀 엉뚱한 얘기같지만 주몽은 과연 실제 인물일까? 설령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몽은 실존인물이 아니며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의 표상(Symbol)이라는 것이고 이 때문에 부여 고구려 백제 몽골이 모두 하나의 민족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몽신화는 부여의 신화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기 1세기경의 기록인 『논형(論衡)』, 3세기경 책인 『위략(魏略)』, 4세기의 『수신기(搜神記)』, 5세기의 『후한서(後漢書)』등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의 신화는 칭기즈칸의 몽골 시조 신화와 거의 같으며 부여 및 백제의 신화와 대동소이하다.

고구려 신화와 부여의 신화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은 고구려와 부여가 같은 민족임을 의미한다. 이것을 달리 보면, 주몽과 동명이 같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주몽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으므로 시기적으로 고구려의 건국과 부여의 건국은 최소 수백년의 차이가 나는데 그 시조가 거의 동일인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여의 건국이 고구려보다도 2~3백년 전이라면 BC 2~3세기의 사건(부여 건국), BC 37년의 사건(주몽의 고구려 건국)이 동일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되어 모순이다.

『삼국사기』잡지 제사조에 보면, 백제의 경우 대개 동명제를 왕의 즉위시 처음으로 맞는 새해 정월에 지내는데 이것은 태양신(조국신)에 대한 제사를 의미하는데 반하여, 실질적인 시조인 구태제는 1년에 4회를 지내고 있다. 즉 동명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범한국인들 공동의 신(태양신, 천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닌 또 다른 이유는 이 주몽이라는 말 자체가 ‘활쏘기의 달인’이라는 보통명사라는 점이다. 즉 주몽이라는 말이 명궁(名弓)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명궁은 모두 주몽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금와왕의 아들의 이름은 분명히 나오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문제는 이 시기가 중국에서는 역사학이 상당히 발달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문자가 없는 범한국인(동북방의 유목민)들의 사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형태로 구전되다가 사서들에 일부가 채록되어 전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물론 건국의 과정에서 영웅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있겠고 그 영웅의 가문이 부족통합의 핵심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업적이 이 가문의 시조에게도 돌려지고 그럼으로써 그 민족의 집단무의식으로서 민족적 표상으로 등장한 것이 주몽의 신화로 볼 수 있다.

주몽이 실존인물인지 여부를 좀더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다른 기록과 대조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삼국사기(백제본기)』는 주몽이 전한 건소 2년(BC 37) 2월에 남으로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소서노를 취하여 妃(비)로 삼았다고 하는데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에는 주몽이라는 말은 없고 고구려라는 말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소서노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삼국사기』는 고구려의 건국시기를 건소 2년이라고 하지만 소서노는 실존인물로 추정되는데 그녀가 활약한 시기는 AD 2세기 말~3세기로 무려 2백년 이상이 차이가 나고 있다. 쉽게 말해서 AD 2세기 말~3세기의 사건이 BC 37년의 사건들과 동시대로 묘사되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치 백제의 계백장군과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서로 싸울 수가 없듯이 애초에 주몽과 소서노도 만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소서노는 실존인물로 확인이 되는데 반하여 주몽은 실존인물이라는 증거를 다른 책에서 찾기는 어렵다.

참고로 동명(東明)도 고유명사가 아니라 부여민의 근간이 되는 예맥(濊貊)이 의미하는 동쪽, 해, 밝음(發 또는 博古), 해뜨는 곳, 쇠(금속) 등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보이므로 동명 또는 동맹이라는 말은 총체적인 예맥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서에 동명 또는 동맹 등과 유사한 한역어(漢譯語)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혁거세라는 표현과도 다르지 않다.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사실은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군신화에서 단군도 실존인물이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 전체의 표상이므로 오히려 그 때문에 민족의 이동이나 뿌리를 찾기가 수월한 것이다.

즉 우리는 부여신화와 고구려 신화를 보면서 이 두 나라의 구성원이 같은 민족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고 이를 계승하고 있는 백제(반도부여)와 몽골 또한 같은 민족임을 알게된다. 이것이 역사학에서 신화가 가진 최대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주몽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데 절망하는 것은 항상 ‘영웅’을 고대하는 우리들 자신의 부조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글 = 김운회/동양대학교 교수 (저서 `대쥬신을 찾아서`)
출처 : http://blog.daum.net/jusen/418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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