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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의 무명 영웅들…우리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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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의 무명 영웅들…우리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입력 2019-08-22 15:52수정 2019-08-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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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느 월요일 저녁과 같이 재활용 쓰레기를 갖다 버렸다. 종이, 플라스틱, 비닐 등 한 번에 들고 가기 어려운 상당한 양이었다. 쓰레기 수거장에 여러 번 왔다 갔다 하기 싫어 그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들려고 했다. 양 손으로 종이가 들어있는 큰 상자를 들자마자, 아내가 페트병을 담은 봉투들을 내 오른쪽 엄지손가락, 유리병이 든 봉투를 왼쪽 엄지손가락에 끼워줬다. 어느 정도였냐면 종이 상자는 얼굴까지 올라와 시야를 가렸고, 양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승강기를 타고 1층에서 내려 수거장을 향해 가고 있는데 높이 쌓은 박스가 아슬아슬 떨어질 것만 같았고, 손가락은 아파서 어쩔 줄 몰랐다. 빨리 내려놓고만 싶었다. 바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무거운 상자를 뺏어 들어 나 대신 마지막 몇 m에 이르는 수거장으로 옮겨주었다. 대단히 고마웠다. 그분이 누구였을까? 바로 우리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였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커서 경비실이 두 개가 있다. 정문에 하나, 그리고 후문에 하나. 단지에 근무하는 경비원은 총 10명인데 밤낮 교대로 5명 씩 있다. 옛날에는 더 많았던 것 같다. 왜 줄어들었을까? 글 말미에 밝히겠다.

경비원들은 대한민국의 셀 수 없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정말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 예를 들어 연중무휴 밤에 순찰을 돌고, 봄에는 바닥에 떨어진 벚꽃을 쓸어 담고, 여름 장마 때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끔 미끄럼 방지매트를 깔아놓고, 가을에는 떨어진 낙엽을 긁어모으고, 겨울에 눈이 오면 새벽이라도 제설을 한다(어쩔 때 하루에 여러 번). 그리고 우리 단지에서는 매주 월요일 저녁부터 화요일 아침까지 재활용품 분리를 도와주고 정리를 하는 등 끝이 없어 보이는 거창한 작업을 한다. 뿐만 아니라 등기우편물을 보관해주고, 드나드는 차량을 지켜보고, 문의하는 사람들에게 안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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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분들은 감사 인사를 받는 대신에 자주 야단을 맞는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불만이 있으면 제일 먼저 불평해하는 대상자는 현장 경비원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휴게실이나 식당 시설도 없이 장시간 일을 해야 한다. 5년 전의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40%에 해당하는 경비원이 지난 1년간 언어폭력을 겪었고, 8.9%가 신체적 폭력 또는 위협을 당했다고 했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들에 관한 뉴스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꼭 필요하고 유용한 일만 하는데 왜 고용된 경비원의 수는 줄어들었을까? 경비원들은 후한 급여를 받기는커녕 저소득의 직무이고 고용안정이 없는 일이다. 심지어 한 보도에서는 2017년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서울 내 5310명의 경비원 중 6%가 해고통지서를 받았고 한다. 이 기사를 읽었을 때 슬프고 화가 났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월마다 내는 관리비 1만~2만 원을 아끼려고 경비원 수를 줄이고 나머지 경비원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에서 수고하는 10명의 경비원의 모습을 보면 감사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우리 삶의 무명 영웅들이다.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그 아파트에는 경비원이 최소 한 명은 있을 것이다. 매일 도와주고 봉사하는 경비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더 나아가서는 추석, 설날 때 선물을 주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창피하게도 우리 경비원들의 성함을 모른다. 명찰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좋은 핑계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보자마자 크고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 이번 추석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못해드렸던 선물을 할까 한다.

한국에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돕는 분들이 많다. 아파트만 해도 경비원들뿐만 아니라, 청소와 관리를 하는 분이 있고, 동네로 넓히면 쓰레기를 수거해 가거나 청소를 해주는 환경미화원, 교통정리 봉사를 해주시는 모범 기사,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시니어 봉사단 등이 있다. 이런 분들께 ‘수고하십니다’하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즐거운 하루하루가 될 것이라 믿는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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